이름은 잊어버렸는데, 관람객과 1:1 눈 맞추는 퍼포먼스를 하던 중에 전애인이 찾아와서 가만히 눈을 맞추다 울어버린 아티스트 말이다. 아침에는 그 전애인과 아티스트의 이별 이야기를 들었다: 둘이 중국 만리장성에 가서 함께 걷다가, 어느 지점부터는 등을 돌려 반대로 걸어가버렸다고 했다.
상징적이고 구체적으로 '헤어짐'을 표현한 점이 멋져서 감명받았고, 그 팩트 덜렁 한 줄로 아침부터 굉장히 감상적이어졌다. 한 걸음 걸어나갈 때마다 그와 물리적으로 두 걸음씩 멀어진다는 것이, 그 걸음마다 매번 희망과 미움과 사랑을 조금씩 내려놓고, 매순간을 뒤로한 채 앞으로 걸어가버리는 것이, 세상에서 가장 긴 성벽에서.
일생일대의 사랑과 안타깝게도 헤어져야 한다면, 저 사람들처럼 물리적으로 헤어지겠다. 난 유난히 '걷는다'는 행위를 좋아하고, 또 그에 의미를 둔다. 혼자 걷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지만, 누군가를 (어떤 의미로든) 좋아하기 시작하면 '같이 걷고 싶다'는 욕망을 느낀다. 사랑에 빠진 나의 꿈은 언제나 상대들과 가을 길을 발맞춰 걸으며 끊임없이 미묘하게 변하는 몸 사이의 거리, 공기의 이동, 순간의 감정들, 산책의 서사를 함께하는 것이었다. 그래서 더더욱, 언제나 나란히 걷곤 했을 그와 한 순간 등을 지고 점점 멀리 걸어가버려야만, 그렇게 무너질 듯 아프고 어려운 발걸음을 견뎌내야만 그를 향한 사랑을 충분히 정리하고 애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.
Abramović and Ulay at Great Wall of China
2014. 11. 28. 02:30
2014. 11. 28. 02:30