팔월 -이병률-
햇살은 그런대로 칠월의 사고들을 비추고 있습니다.
날개 없는 새가 그리 날아갈 수는 없을 거라고
생각하는 동안
칠월은 가난했습니다
더군다나 한 번도 무언가에 쓸려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이 생은 도처에 나를 너무 낳았습니다
어쩌면 나를 버릴 때도 올 것 같아서였습니다.차도 위 사람이 쓰러져 누운 형태로
그어진 흰 선 모양은
칠월을 지나는 길에 누워 있는 나입니다
언젠가 한번은 수박 더미가 깨져 뒹굴던 그 자리임이 분명합니다그렇게 힘이 든다면 안녕,
햇살은 일부분을 지우는 나를 주의 깊게 비추고 있습니다
흰 줄 아래
날개를 퍼득이며 나는 뒤틀리고 있습니다
없어지고 있습니다강이 보일 때까지 달리자던 약속은 끊고
안녕,
칠월은 가난했습니다
- <찬란>, 이병률, 문학과지성사, 2010
우연히 집어든 시집, 아무렇게 펼친 페이지에서 발견한 시. 문체나 감성이 마음에 확 와닿아 한참을 읽었다. 마침 서점에서 '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' 음악이 흘러나와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덜컥 사버렸다. 이런 운명적 만남이 참 아름다워. 이런 것에 마음을 기울일 여유와 용기를 갖게 된 건 네 존재 때문일 거야.
나의 시인, 흑마 탄 기사.
팔월, serendipity
2014. 5. 13. 02:27
2014. 5. 13. 02:27