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. 주말에는 사람이 미어 터질 듯 많다고 해서, 10시까지 개관하는 뮤지엄 데이를 노려 일 끝나고 힘겹게 갔다. 그래도 사람이 많았다. 어린 애들도 있었고, 팀 버튼에 아무런 관심을 가진 적 없었던 것 같은 사람도 많았다. 현대 카드가 팀 버튼 전을 개최한 건 참 좋은 일이지만, 홍보를 그렇게 해대서 별로 관심 없는 사람까지 불러 모아 관람 한 번 하기 힘들 정도로 표를 팔아댄 건 참 화나는 일이다. 유령 신부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때는 사람이 나랑 내 친구 밖에 없었고, 1-2주 상영하다가 금세 내렸다. 근데 몇 달 동안 열려있는 미술관에는 그렇게 바글바글...
2. 어두침침하다. 냅킨에 그린 그림, 손으로 쓴 글씨, 습작들 이런 건 조그마한데 거기다 조명까지 침침해서 잘 안 보였다. 얼굴 들이밀고 봤다. 팀 버튼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조명을 낮게 한 거겠지만, 그림 보러 왔는데 분위기만 느끼고 갈 수는 없잖아. 내용은 좋은데, 전시하는 방법과 운영하는 방식이 정말 별로였다. 팀 버튼의 성장 과정대로 전시를 구성했으면서, 사람이 많으니 3층부터 보라 그런다. 내용은 잘 꾸렸으나 관람객이 그 내용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.
3. 볼 것은 많았다. 시간이 넉넉하고 한적했더라면 전부 다 꼼꼼하게 뜯어보고 싶었다. 도착한 시간이 8시 다 돼서라 난 마음이 너무 급했다. 영상이 많았다. 공개되지 않은, 혹은 찾아 보기 힘든 팀 버튼의 초기 작품이나 단편 같은 걸 보여 줬다. 그것까지 전부 다 느긋하게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. '스테인 보이'가 가장 보고 싶었지만, 그건 과감하게 제꼈다. 2000년에 인터넷 기반으로 나온 거라고 하니 나중에 찾아 볼 수 있겠다 싶어서. '빈센트'는 짧아서 끝까지 봤는데, '헨젤과 그레텔'은 끝 부분이랑 첫 부분 약간밖에 못 봤다.
4. 오디오 가이드가 있으면 몰랐던 걸 하나라도 더 알 수야 있지만, 그냥 팀 버튼 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객관적인 내용 뿐이었다. ;팀 버튼이 이 작품을 그리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, 이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걸 기대했는데. 팀 버튼의 느낌은 좋지만, 영화를 많이 안 본 사람이라면 오디오 가이드가 도움 될 것 같다. 나는 팬이지만 열성 팬은 아니라, 다 듣고서 돈이 아까운지 안 아까운지 좀 헷갈렸다.
5. 난 내가 팀 버튼을 좋아해서 그의 영화를 많이 본 줄 알았다. 근데 생각해 보니 조니 뎁 팬이었던 시절 팀 버튼을 여러 번 접하면서 좋아하게 된 거였다. 제대로 못 본 '빅 피쉬'랑 '화성침공' 빼면, 합창단 시절 뮤지컬로 만들려다 실패한 '가위손', 너무 재밌어서 매진 될까 봐 급히 예매하고 봤던 '유령 신부', 조니 뎁에게 처음으로 반해서 30번은 본 것 같은 '찰리와 초콜릿 공장', 무서울까 봐 안 보다가 결국은 본 '스위니 토드', 실망스러운 '다크 섀도우', 5번 정도 본 '이상한 나라의 앨리스', 역시 조니 뎁 영화는 다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 에드 우드' 다 팀 버튼 감독 조니 뎁 주연이다.
6. 예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어설픈 느낌이 팀 버튼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. 지금은 유명 감독이지만, 그 때의 팀 버튼은 지금보다 훨씬 자기 고집 있는 희한한 신인 감독이었을 거다. 오히려 그 작품들을 집에서 느긋하게 다시 볼 수 있으면 요새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. 관람 순서가 엉망진창이라 언제 쯤이었는지 모르겠지만, 아주 젊을 때 혹은 어릴 때 이미 스탑 모션으로 영화를 만든 걸 봤다. 장난감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, 참 귀여웠다. 하지만 사람이 우글우글 해서 제대로 못 봤다.
7. 여태껏 내가 본 팀 버튼의 캐릭터들은 영화에 나온 최종 디자인이었는데, 팀 버튼의 오리지널 스케치를 보니 팀 버튼의 취향이 엄청 대중적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. 예를 들면, 유령 신부 에밀리는 영화에서 봐도 참 무서운 캐릭터다. 그런데 오리지널 스케치에서는 더 무섭다. 팀 버튼은 과장된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 같다. 특이한 비례에서 느껴지는 미묘하고 불안정하고 기이한 느낌이 참 좋다. 팀 버튼의 영화는 캐릭터나 상황, 전개에도 그런 기묘함이 은은하게 깔려있다. 독특한 팀 버튼만의 양식을 '버트네스크'라고 일컫는다나!
8. 팀 버튼의 영화를 보면 짐작은 할 수 있지만, 난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별로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. 생각해보니 팀 버튼 영화에는 꼭 개가 나온다. 개를 참 좋아하는구나 팀 씨... 내성적인 사람은 고양이를 더 좋아하고, 외향적인 사람은 개를 더 좋아한다는 선입견을 쾅쾅 깨 주고 있다.
9. 내가 아직 안 본 팀 버튼 영화들, 팀 버튼이 냈다는 책 전부 다 보고 싶어서 핸드폰에 써 놨다. 일단 오늘은 팀 버튼의 첫 장편 영화인 피위의 대모험이랑 단편 애니메이션 '스테인 보이'를 보려고 생각 중이다.
'모데라', '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', '검정 가마솥', '1997', '슬리피 할로우', 'Trick or Treat', '배트맨'. 배트맨은 분명 어릴 때 TV에서 본 적 있다. 가위손이랑 화성침공처럼. 하지만 제대로 다시 보고 싶다. 놀라운 건, 조니 뎁 팬 시절 슬리피 할로우를 쏙 빼놓고 안 봤다는 거. 빨리 봐야디.
2013. 4. 4. 12:17